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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글] 예지몽

 
 
w. 이구
   @eg_hq1
 
 
 



“히나타!!!”

나는 오지 말라는 뜻으로 연신 고개를 휘저었다.
하지만 내 눈의 깜박거림이 마치 카메라가 된 듯, 한번 깜박거릴 때마다 카게야마는 내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어느 순간. 

쾅.

두려운 소리가 귀를 스쳐 갔다. 

“카게야마?”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내 몸이 멈추었다. 
나는 잠시 동안 가만히 있다가 간신히 한발자국씩 움직이며 말했다. 
내가 걸어온 곳에 내 발자국들만 남았다. 

“카게야마? 아니지?”

나는 누군가 대답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눈을 감았다 뜨기만을 반복했다. 

“카게야마? 카게야마군?” 

아닌데. 
아니어야 하는 건데. 
나는 급하게 다가가 카게야마의 심장에 귀를 대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들려오는 소리가 없었다. 
카게야마의 두 뺨에 자신의 손을 대보았다. 남아있는 온기가 빠져가는 게 실감 났다. 
자신이 준 목도리가 자꾸만 손에 걸려 괜히 소름이 끼쳤다. 

그때 갑자기 무언가가 자신의 손을 감아오는 감각이 돌았다. 
그 이상하리만큼 섬뜩한 느낌에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자신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결국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아.” 

이거 피잖아. 
나는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피투성이였다. 
조금씩 내리던 눈들이 녹아가고 있었다. 
흘려져 있는 피에 입 맞추면서. 
자신의 바지도 이미 빨개져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은 결국 인정하게 만들었다. 
내가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 카게야마가 죽었다. 
나를 지켜주다 죽었다. 
그때 맴돈 겨울의 향기는 잊을 수가 없었다. 
피에 닿으며 사르르 녹던 그 눈들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려오는 눈들을 원망스레 여겨 하늘을 노려보는 것밖엔. 

* * *

내가 문을 열자 갑자기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별로 당황하진 않았다. 속으로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나였으니.
당연한 거라고. 어제 카게야마가 죽었고, 그건 오로지 나 때문이니까. 
히나타는 적막을 당연하게 여기고선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비어있을 옆자리를 보았다. 
“히나타 멍청아. 지금이 몇 시냐? 수업 시간이잖아.”
비어있을…비어있어야 하는데? 
비어있어야 할 자리에는 카게야마가 있었다. 
어제 죽은 카게야마가.
내 꿈속에서. 

* * *

아. 그래. 깜박했다. 
나는 예지몽을 꾼다. 
어제 카게야마가 죽은 것은 꿈이었나보다. 
그렇지 않고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카게야마가 설명이 안 되니까. 
당황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런 꿈을 꾸는 게 처음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이렇게 충격적인 내용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오해한 것 같다. 
이상하게도 내 꿈은 자연스럽기 그지없었기에. 
꿈과 현실이 헷갈리는 건 그럴 수 있지만, 정말 기묘하게 내 꿈은 꼭 내가 잠이 들면 깼다. 
이번 꿈도 그랬다. 
카게야마가 죽은 후 나는 집에 왔다. 
평소처럼 씻고,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눈을 뜨니 꿈에서 깼을 것이고, 이렇게 학교에 왔을 거다. 
이러니 오해를 안 할 수가 있나. 
아무래도.. 심하게 실감 나긴 하니까.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다. 그 모든 게 꿈이라서. 
하지만 그와 동시에 최악이었다. 불안함과 두려움이 자신을 감싸오는 게 느껴졌다. 
그 꿈이 예지몽인 게 확실하기 때문에. 
그 말인즉슨, 카게야마는 결국 죽는다는 얘기가 된다. 
끔찍하다. 무척이나. 
꿈 속에서의 모습이 떠올랐다. 짧게 생각났음에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살짝 헛구역질했을까. 옆에서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나타? 왜 그래?”

“…?”

“뭐야 그 표정은?”

“아.” 

맞다. 옆에 카게야마가 있었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같이 옥상으로 올라왔었다. 
오늘따라 날씨가 좋아서. 괜찮은 곳에 앉아 차가운 척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감았었는데. 
언제 이렇게까지 생각이 옮겨 간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카게야마의 부름에 정신이 돌아왔으니 다행인 건가. 

“아는 무슨 아야. 그래서 오늘 왜 늦었냐고. 니가 늦는 게 말이 돼?”

“오늘? 아 오늘 늦은 거 말이야?”

“지금 몇 번째 물어보고 있는 건지는 아냐?”

카게야마는 오늘 내가 늦은 걸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너 내 말 또 안 듣고 있지.”

“아니? 엄청 잘 듣고 있어!”

“말만 또 잘하지 너는.” 

나는 그냥 카게야마의 말에 웃었다.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서. 한참을 그렇게 서로만 바라봤을까. 
그 긴 정적을 깬 건 나였다. 

“이만 내려갈까.” 

나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비록 카게야마가 내 팔을 잡아서 그대로 다시 앉게 됐지만. 
카게야마의 행동에 살짝 당황한 나는 그 붙잡음에 의문을 표했다. 물음표를 가득 띄운 얼굴로. 

“왜 늦었냐고. 벌써 4번째다 이 멍청아.”

“아… 그거?” 

포기할 줄을 모르네 얘는. 

* * *

결국, 나는 대충 둘러댔다. 
카게야마에게 꿈에 대해 말을 할 수 없기에. 
그냥 가위에 눌려서 그랬다고 했다. 일어나보니 이미 시간이 늦어있었다고.

“…오”

“뭐야 그 반응? 내가 가위눌린 게 좋은 일인가요? 카게야마군?”

“…어? 아니. 그… 난 가위 한 번도 안눌려봐서.”

카게야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 
저렇게 단순하고 눈치도 없는 놈은 꿈도 안 꿀 거라고, 이미 내 안에서 결론 내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완전 정답은 아니고 살짝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카게야마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로 인해 정정되었다. 

“악몽은 자주 꿔.”

카게야마가 악몽? 안 어울려. 
악몽은 더더욱 안 꿀 것 같았는데. 
카게야마는 무슨 악몽을 꾸는 걸까. 
살짝 궁금증이 돋아났지만 얼마 가지 않았다. 
카게야마가 갑자기 음료수를 주었기 때문이다. 

“뭐야? 갑자기?”

카게야마는 내 반응에 살짝 부끄러운지 목덜미를 살살 쓸면서 대답해왔다.
그냥 오늘은 자판기에서 두 개가 뽑혔다고. 

“뭐?”

“아니…그냥… 두 개 뽑혀서 먹으라고….”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어떻게 자판기에서 음료수가 두 개가 뽑히는가.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카게야마는 음료수를 뽑을 때 꼭 두 개를 동시에 누른다는 것을. 
지금 하는 말은 그게 성공했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걸.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며 나에게 음료수를 주는 건 내가 가위에 눌렸다는 말에 대한 걱정의 표시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환하게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카게야마.”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나는 활짝 웃고 있었기에

.“….멍청아.”

카게야마는 다시 부끄러워졌는지 아예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나는 그런 얼굴을 더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카게야마가 돌려버린 고개만을 쳐다봤다.

“…..”

“…뭐야?”

“!”

나도 모르게 잠시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 

“할 말이라도 있냐?” 

그리고 이어서 나온 말에 나는 답했다. 정확히는 카게야마가 변명의 기회를 주길래 덥석 물은 것이다. 
당연히 이 바보야마는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겠지만.

“…너 곧 생일이잖아!”

“?그러네”

“그러네가 뭐야 그러네가. 1년에 한 번뿐인 생일인데!”

“…그런가.”

“그날 나랑 하루종일 같이 있자!”

“!”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카게야마의 얼굴이 눈에 띄게 변했다. 
처음보았다. 그런 표정은. 
어딘가 부끄러우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표정. 
눈에는 기대를 가득 담고 있으면서도 상반되게 꾹 다물어져 있는 입. 
그래도 완전히 참을 수는 없는지 신나게 올라가 있는 눈썹까지. 
그런 사소한 것들을 빠르게 뜯어보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카게야마의 표정은 너무나도 귀여웠다. 
나도 모르게 자꾸 피식 웃게 됐다. 

“좋다는 거지? 카게야마군?”

카게야마는 잠시 시선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긴장됐었나보다. 
나 역시도 이 말을 하려고 며칠 동안 준비했었으니, 둘 다 똑같은 건지도. 

* * *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그 사이 눈이 한 번 더 내렸다. 내 꿈속에서. 
꿈 속에서의 일이 겨울이 가기 전에 일어날 거라는 그 초조함과 
그럼에도 언제인지 몰라 답답한 마음이 자꾸만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카게야마도 혹시… 
정말 혹시 예지몽을 꾸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번 꿈은 저번보다 더 자세했다. 
카게야마가 차가 오기 전에 나를 지킨 것 같았다. 
분명 트럭에 가려 오는 게 보이지 않던 차로부터 나를 지켰다. 소리를 듣고 지켰다기엔 너무나도 확신에 찬 몸짓이었다. 
사실 카게야마가 내가 죽는 꿈을 꾼 게 아닐까? 
내가 머리를 꽁꽁 싸매며 고민하던 그때 불쑥 카게야마가 나타났다. 

“뭐야?”

“카게야마!”

“뭐냐니깐?”

“오자마자 뭐냐니? 예의는 집에 두고 온 건가요? 카게야마군?”

“아니 그 목도리 뭐냐고.” 

나는 고개를 푹 숙여 두껍게 튀어나와 있는 목도리를 보았다. 

“아, 이거? 커플 목도리야.”

“?”

“자 여기 카게야마 니꺼.”

카게야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일단 내 선물을 받았다. 받고 나서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뭐해?”

“….”

아무 반응이 없었다. 카게야마는 그저 목도리만 빤히 바라보았다. 
목도리가 마음에 안 드는 건가. 괜히 불안해졌다. 

“카게야마? 목도리 맘에 안 들어?”

“….아니.” 

그러면 왜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거야? 좋아하는 티라곤 하나도 안 내고 이 바보야마! 
속으로만 화를 조금 냈다. 직접 입 밖에 내면 만나자마자 싸우는 꼴이 되겠지 싶어서. 

“그럼 왜 그러고 있는데?”

“…..”

“카게야마?”

“….”

끝까지 아무 말도 안 하는 카게야마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나는 한마디 소리치려고 했다. 
어… 잠시만. 
설마? 설마 아니겠지? 

“너 목도리 혼자 못 두르는 거 아니지?”

“….!”

카게야마의 짙은 눈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그리고선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우물쭈물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나는 확신했다. 
아. 카게야마 혼자서 목도리 못하는구나. 

“괜찮아. 바보야마! 목도리 그거 하나 못 두르는 거쯤이야! 내가 앞으로 맨날 해주면 되잖아! 내가 둘러줄 테니까 몸 좀 숙여봐.” 

내 말에 카게야마는 순순히 허리를 굽혀 고개를 내밀었다. 가까이 다가오자 카게야마에게서 샴푸 향이 났다. 
은은하니 좋았다. 달달한 기분을 채우기에 좋았다. 

“카게야마군… 잘 봐둬.. 이렇게.. 이렇게…”

내가 열심히 목도리를 둘러주고 있었을까. 갑자기 카게야마가 벌떡 허리를 세웠다.

“?뭐야”

“이 멍청아.”

내 이마에 딱밤을 한 대 툭 쳤다. 가벼운 손짓. 나는 아프지도 않은 이마를 두 손으로 꼭 가렸다. 
아픔과 다른 찌릿함이 내 이마에서 움찔거렸기 때문에. 

“이거.”

카게야마는 내가 이마를 사수하는 사이 무언가를 꺼냈다. 
주섬주섬 내게 보여준 건…

“목도리???”

다름 아닌 목도리였다. 무늬는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맞아.”

“뭐야 목도리라고? 쑥맥야마가 이런 것도 준비할 줄 알았단 말이야??”

“하?” 

말을 비꼬면서 했지만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내 앞에선 카게야마가 뭐라고 중얼대고 있었다. 
간간히 들리는 내용을 봐서는 자기도 겹칠 줄 몰랐다… 누나랑 같이 샀다… 뭐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카게야마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내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카게야마가 내게 선물을 주었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기뻐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 상황에도 꿈은 잊혀지지 않았다. 
카게야마가 죽는 그 꿈. 

* * *

카게야마가 준 목도리로 바꿔 두른 나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카게야마에게 꿈에 관해서 언제 얘기할지. 언젠가는 말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지금 상황이 좋아서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었다. 
같이 하려고 산 목도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준 목도리를 두르고 있느라 같긴커녕 
둘이 다른 목도리를 끼고 있는 게 되어버렸다. 난 그게 괜히 좋았다. 
별로 잡아보지도 않은 손을 맞잡고 걷는 이 상황도 좋았다. 

“히나타.”

카게야마였다. 나 대신 말을 먼저 꺼낸 건. 

“음…그게 어…”

카게야마는 눈을 위로 굴리며 입을 가만두지 못했다. 불안함이 슬며시 얼굴을 내밀었다. 

“왜?”

“너는 내가 죽는 꿈 그런 거 꾸면 어떨 것 같아?” 

역시나. 내 예상이 맞는 것 같다. 카게야마는 내가 죽는 꿈을 꾼 거다. 
예상을 했음에도 얼굴에 당황이 가득했나? 카게야마가 날 잠시 보더니 급히 말을 바꾸려고 했다. 

“아니. 그.. 어 그냥 책? 책에서 본 거야”

“카게야마…나는”

“아니야. 답하지 마.”

“카게야마! 나는…”

“괜찮아.” 

내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모습에 소리를 쳐버렸다. 조급한 마음이 자꾸만 티를 냈다. 

“카게야마!!”

카게야마는 조금 놀랐는지 자꾸만 피하던 시선을 내게 가져왔다. 드디어 눈이 마주쳤다. 
시선이 부드럽게 얽히는 게 기묘했다. 이 상황이 평범하지 않아서인가. 

“나도 그런 꿈을 꾼다면 어떨 것 같아?”

“뭐?”

“나 네가 죽는 꿈을 꿔.”

“….”

얼굴이 초마다 어두워졌다. 아마 카게야마는 충격을 받았겠지. 
나와 달리 그냥 개꿈 정도로 알고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나도 이런 꿈을 꾼다고 하니. 
과연 카게야마는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우리는 꿈도 비슷하게 꾸는 운명이라고 생각할까? 

“너는 내가 죽는 꿈을 꾸는 거지?”

카게야마는 내 질문에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그리고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게야마 답지 않은 소심함이다. 

“그래서 아까 니가 죽는 꿈을 꾸면 어떨 것 같냐고 물은 거고?”

“응.”

“내 대답은 무섭다야.”

“그렇겠지. 나도 히나타 네가 죽는 꿈을 꿀 때 그랬으니까.”

“아무래도 그렇지.”

“너는 그러면 내가 죽는 꿈을 꾼 거야?”

“응.”

“…그렇구나.”

“막을 거야.”

“?”

“그게 실제로 일어날 거라는 뜻이야. 난 그걸 막을 거라는 의미고.” 

계속 꼭 잡고 있던 손이 풀어졌다. 아마 의도한 건 아닌 것 같고, 손에 힘이 빠진 게 아닐까. 

“내가 꾸는 꿈이 현실이 된다면 믿을래?” 

풀어진 손을 다시 잡으며 내가 물었다. 
솔직히 나 같아도 내 말을 믿지 못할 것 같아. 그래서 카게야마가 믿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아.

“….”

카게야마는 꽤 긴 시간 동안 대답이 없었다. 대답없는 카게야마 덕분에 내가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흘긋 시선을 내려 내 손을 보니 떨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떨고 있다. 카게야마가 날 믿지 않을까 봐. 나보고 미쳤다고 할까 봐. 
이 바보가 그럴 리는 없겠단 걸 알아도 괜히 두려웠다. 
카게야마의 손을 꼭 붙잡고선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내 말을 믿어주기를. 

“믿어.”

“!”

“믿을게.” 

그 말 한 번에 떨림이 멈췄다. 
아아. 그제서야 알았다. 
나는 카게야마를 다른 무게로 사랑하고 있구나. 
마음과 머리가 다른 무게로 좋아하고 있구나. 
마음이 이미 넘쳐흐르는데 머리는 겨우 꽉 찼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구나. 
과하게 좋아한다는 걸 이제서야 알다니.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미안해 카게야마. 
사실 난 전부터 알고 있었어. 
내 꿈은 어떻게든 이루어질 텐데, 내가 자꾸만 발버둥 치는 거라는 걸. 

네가 만약 나라면 어쩔래? 
음… 역시 이 질문에 답은 하지 마. 카게야마. 
대답하지 말아줘. 
듣고 싶지 않으니까. 

* * *

귓가에 들리는 소리가 시끄럽기 그지없다. 
내 숨소리는 심하게 차분했고, 눈앞은 뿌옇게 되기 시작했다. 
눈이 내려선가. 꿈에서도 눈이 내렸는데. 
그래서 지금 결말은 어떨까? 

“히나타.”

카게야마의 목소리를 봐선 내가 원하던 결말이다. 

“히나타?”

아마 맞을 거다. 나는 대답을 웃음으로 대신했다. 

“히나타! 히나타 쇼요!!”

잘 안 들린다. 네가 준 목도리에 기뻐했을 때처럼,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행복했다. 이렇게 된 것이.

“….주지 말걸.”

그렇지만 담아야겠지. 네 목소리를. 

“괜히 줬어…. 이딴 목도리.”

“….?”

“꿈에서 본 목도리가 있는 게 신기해서 산 내가 바보지.” 

바보같이 자신이 꿈과 똑같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미안해.  내가 맘대로 바꾼 거야. 

솔직하게 말하면 너는 화를 낼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조금 궁금해졌다.

“….히나타”

내 이름에 뭐라도 있는 듯이 자꾸만 나를 불러댔다. 그 목소리는 물기가 가득했다. 
말해주고 싶다. 네 꿈대로 된 게 아니라고. 
내 꿈대로 되어야 하는 걸 내 맘대로 바꾼 거라고. 
그러니까 자책하지 말라고. 근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길게 말할 수 없었다. 

“네 꿈에선 내가 죽었다며.”

“….”

“아니잖아…..”

“미안해.”

“!”

“카게야마…”

죽기 전에 주마등이 펼쳐진다 했나. 생각보다 그런 건 없었다. 내게 스쳐 간 건 다름 아닌 꿈. 
나를 무섭게 불안하게 만들었던 그 꿈이 스쳐 갔고, 나는 결국 만족했다. 
그 꿈에서 카게야마가 살아있었기에. 
죽은 나를 붙잡고, 흐르는 피를 바라보며.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카게야마 부탁 하나를 해도 될까. 네가 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눈이 내릴 때마다 내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어. 자주는 말고 가끔은, 정말 가끔은 눈물을 흘려줘도 좋을 것 같아. 
네가 나 대신 다 해줘. 네가 죽으면 내가 했을 것들을. 

이기적인걸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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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타? 히나타?”

들려오는 말은 없었다. 

“장난치지 마…. 이게 뭐 하는 거야.”

그제서야 카게야마의 눈에서 툭툭 떨어졌다. 꼭잡고 내려오지 않던 눈물들이. 

“이제 그만해…. 쇼요…”

꼭 잡은 그 손에 안타깝게도 온기는 없었다. 
카게야마는 하늘을 원망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따뜻함은 손 위로 내리는 차가운 눈뿐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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